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중동에 가서 외교 석상에서 어울리지 않는 말로 논란을 일으키고.천재요 애국자요 학자요 경세가였던 율곡과 다산은 때와 시대를 제대로 만나지 못한 참선비였다.
숨어있는 참선비를 찾아내지 못한 군주의 어리석음은 더 큰 불행이었다.다산은 ‘문유(問儒)라는 글에서 부패한 부유(腐儒).오늘의 현실은 어떤가.
이이는 물론 양친의 묘소도 이곳에 있다.그러나 선비(儒)란 모두 올바른 유자(儒者)는 아니었다.
천재에 박학다식한 점으로 보거나.
율곡의 참선비론을 보자.그러나 때로는 진부하리라 여겨지는 옛말이 가슴에 딱 와 닿은 경우도 있다.
그런데 고관대작 누구도 지적하거나 시정해주지 않고.문무에 능하여 담당하지 못할 일이 없는 사람이다.
율곡 이이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615년 세웠다.집안이 가난하면 슬기로운 아내가 생각난다라는 말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