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도 당시를 평가하고 앞날을 설계하기에 너무나 힘들었겠지만.
이 때문에 근대적 지식인들에게 조선 정부와 청은 근대화를 가로막는 구 세력.그들은 일본의 군국주의의 위험성을 보지 못하고 청의 위협과 조선 정부의 무능만을 봤다.
한국 역사학계에서 사회적 관심을 끄는 논쟁이 활발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에서 논쟁이 시작되었으니 감사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문제는 근대적 지식인들이 일본의 근대화가 민주주의적 개혁의 길이 아닌 군국주의의 길이라는 점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점이다.이들은 일본의 한반도 내정 개입이 조선을 강한 국가로 자립하게 함으로써 중국과 러시아의 일본에 대한 위협으로부터 조선이 완충지대가 되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주장한다.
150년이 지난 현재의 역사가들 역시 이 시기를 평가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일본이 1876년 강화도 조약을 맺을 때부터 조선을 식민지화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조선 정부뿐만 아니라 개혁파들도 청·일.
내부 문제로 무너져가고 있었던 러시아가 대한제국을 도와줄 수 없었다.비자금 수사 수용거부를 통한 민주선거 보장은 한국에서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위한 한 토대를 놓았음이 틀림없었다.
지금 우리는 극단적인 진영대결과 승자독식 민주주의의 망국적 폐해를 절감하고 있다.문민정부 30주년의 의미는 거기에 있다.
즉 탈군부개혁은 김영삼 문민정부의 최대 업적이었다.당시 호남은 전국 평균보다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