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군사교관 파견의 대가로 영흥만을 차지했다는 소문에 영국은 1885년 4월 거문도로 향했다.
거문도 주민이 영국인과 어울려 찍은 사진.이런 인간이 왕이었으니 백성만 불쌍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상황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충돌했던 영국과 러시아 간에 협상이 타결돼 영국이 거문도를 점령할 명분이 없어졌다.러시아가 군사교관 파견의 대가로 영흥만을 차지했다는 소문에 영국은 1885년 4월 거문도로 향했다.일본과 미국도 관망하거나 동조해서다.
윤석열이었다녹두거리 사진사 80년대 증언메뉴판에 ‘품절 스티커 붙였다40년 살아남은 사장님 ‘꼼수월 1000만원 못벌면 장사야?김밥집 여장부는 배달이 싫다/.쓰시마가 최종 물망에 올랐고.
차준홍 기자 급기야 고종은 아관파천까지 단행했다.
오른쪽 섬이 거문도항이 있는 고도다.이때 영국은 거문도 임차비용으로 매년 5000파운드(현재 기준 약 35억원)를 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에도 러시아로 기울었던 조선 조정이 돈으로 영토를 거래하는 건 불가하다며 교섭을 거부했다.
그리고 2년 후인 1867년 알래스카를 미국에 헐값에 팔았다.그러자 한반도는 유럽의 발칸반도처럼 동북아의 화약고가 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곧이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 연쇄적으로 터졌다.
마침내 크림전쟁(1854~1856)으로 충돌했다.러시아도 마찬가지여서 흑해함대가 보스포루스 해협을 간신히 빠져나와 지중해로 나와도 지브롤터에서 막히면 대서양 진출은 물거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