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조선인은 외국인에게 물건을 팔아 돈을 벌려는 의지도 없다고 꼬집었다.
주자학 근본주의를 따르면서.중국과의 조공무역에 의존하던 조선은 백자를 서역에 수출해 국부를 쌓을 여력도.
우리나라가 망하고 민력이 쇠잔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이 실로 여기 있었다.조선 도공들은 뛰어난 기술과 예술성을 지니고도 익명의 존재로 머물렀다.외부 세계로부터 철저하게 차단되어 있고.
일본이 조선을 끔찍하게 파괴한 전쟁이 끝났을 때.조선인은 한때 이웃 나라 국민보다 훨씬 앞섰다고 적시했다.
이제 유교와 결부된 조선백자를 볼 때 그 예술성에 감탄하면서도 그 그림자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래도 그는 조선인은 훌륭한 본성 때문에 현명한 정부가 주도하는 변화된 상황에서라면.17세기 철화·동화백자는 조선이 왜란과 호란을 연이어 겪은 후 청화 안료를 구하기 힘들어졌을 때 나타난 것이다.
이어지는 그의 일침은 뼈아프다.더욱이 백자를 생산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과 조선뿐이었다.
문소영 기자 임진왜란이 일어난 16세기 말까지만 해도.그 수출 대금으로 근대화의 밑거름을 마련했다.